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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이 글은 특정 작품에 대한 감상이 아닌 그저 오랜만에 미술관을 방문한 뒤 나의 생각의 흐름에 따라 작성한 것이다.
한남동에 위치한 리움미술관 히로시 스기모토 기획전. 표가 두장이 생겨서 갔다. 미대를 나온 사람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대형 미술관에 돈 쓰는 것이 아깝다. 그래서 특별히 좋아하는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고서는 제 값을 내고 전시를 보진 않는다. 사치라고 생각한다. 문화라는 거대한 이름 하에 포장되는 엄청난 사치. 그 돈으로 차라리 홍대 앞이나 서울 곳곳에 있는 대안예술공간에 가서 머그잔이라도, 노트 한권이라도 사가지고 나오겠다. 그것이 우리나라 문화 예술 발전에 훨씬 적극적으로 이바지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외는 아까 말했듯 현대미술작품들, 더 명확히 말하면 동시대 미술작품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눈으로 꼭 보고 싶다. 설치작품은 사진으로 봐서 도저히 감이 안오기도하고, 회화와 달리 적극적인 감상이 가능하기 때문에(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더욱 생생히 느끼고 싶다. 또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작가들이 만들었기에 다른 해설이나 시대적 배경지식이 없어도 감상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다는 강점이있다.
그런면에서
리움은 기획전보다 상설전이 더 매력적이었다.
상당히 유명한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었다. 삼성이 괜히 더 싫어졌다. 그래도 이렇게 소장해서 보여주니 한편으로 감사하다가도 괜히 열받고 그랬다.
드쿠닝, 장 뒤뷔페, 바스키아, 루이스부르주아, 신디셔먼, 길버트앤조지, 앤디워홀, 제프쿤스, 데미안허스트등의 작품들이 있었다. 특히 데미안허스트의 작품을 실제로 보니 새롭게 다가왔다. 제프쿤스의 조각작품은 언제봐도 경이롭다. 부활절 달걀이라는 거대 조형물은 귀엽기까지했다.
이렇게 미술관을 찾은 것은 참 유익하긴 하지만. 딱딱하고 지루한 미술관의 어떠한 위압감은 상당히 싫다. 누군가에게는 미술관에 자주 간다는 것이 마치 중세시대 살롱문화처럼 교양인과 비교양인을 분류하는 잣대가 되는 것 같아서 싫다. (물론 이런 생각을 요즘에는 안하는 분 들이 다 많은것 같긴 하지만 여전히 미술관의 문턱은 높다.) 가족단위로 오는 것도 사실상 좀 무의미 한 것이, 대부분의 아이들은 작품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저 갤럭시 노트의 단순화 버전인 디지털 가이드 만지는 재미에 가이드 화면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미술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형태를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내가 본 사람들의 부류는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1. 전공생들: 전공생들의 태도도 상당히 부끄러웠다. 그들은 지식의 보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풀며 이야기 한다. 감상을 하러 온 것인지 수다를 떨러 온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감상은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나는 미술관의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참 싫긴하다.) 마치 평가단이 나온줄 알았다. 그들의 지식은 높이 사지만 알고 있는 내용에 기반해서 새로운 감상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알고있는 내용의 확인만이 이뤄지는 관람은 참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했다.
2. 가족단위 관람객: 일명 유모차 부대. 이 젊은 어머님들은 유모차를 끌고 명품백을 드셨다. 엄마들은 아이들을 통제하느라 바쁘고 전시장에 작품보다는 전시장까지 나오는 행위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두고 나들이 겸 나온 것 처럼 보였다. 아이들이 뛰어가는데 그 쪽으로 유모차를 밀다가 유모차가 제프쿤스 작품의 보호라인을 밀쳐서 경보음이 울렸다. 사람 사는 느낌이 나서 개인적으로 재밌고 좋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된다고 컴플레인을 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그 상황마저 재밌었다.
3. 일반 관람객/외국인
이들은 작품에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열심히 무언가 얻어가기 위해 순수하게 관람을 한다. 무슨 생각을 하며 보고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열심히 보고 생각하는듯 해 보인다. 대개는 엄숙하고 침묵된 상태, 경직된 표정으로 사뭇 진지하게 작품을 바라본다.
전시장에 가게되면 작품도 작품이지만 전시장의 분위기, 동선, 작품의 배치나 조명의 쓰임, 관람객등 작품 외적인 것, 전체적인 것을 보는 재미가 더 크다. 재작년에는 많은 전시를 다녔는데 그 때 이런 것들을 바라보는 눈이 생겼다. 그 이후로 전시장을 잘 안찾게 되긴 했지만 가끔 이렇게 전시를 볼때면 여러 각도에서 생각하게된다는 점에서 꽤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돈주고 올 생각은 없다. 만원이 넘는다는 건 참 말도 안되는 가겨이라고 생각한다. 온가족이 즐기는 미술관, 문턱 낮은 미술관이라고 홍보하기 이전에 가격부터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아쉬웠던 것은 리움미술관하면 빼놓을 수 없는 루이스 부르주아 할머니의 거대 거미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라지고 없었다.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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