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은 0을 만드는 일.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일이다.

며칠간 쌓인 휴지통의 쓰레기를 묶어서 버리는 일, 비워진 휴지통에 다시 종량제 봉투를 씌우는 일, 싱크대 거름망에 낀 음식물찌꺼기를 솎아내는 일, 냉장고에 먹지 않아 오래된 음식은 없는지 살피고 비우는 일.
살림의 대부분이 마이너스가 되어버린 순간을 다시 처음 시작점으로 돌리는 일의 연속. 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가.

그런데 나는 이렇게 살림을 돌보고도 아무것도 해낸 것이 없는 하루를 보냈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며 자책한다.

우리는 일상의 노동을 멸시하는 경향이 있다. 삶의 환경에서 항상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관심과 또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부분인지 간과한다.

오늘의 나는 오늘 하루를 그 나름대로 애쓰며 살아냈다. 그 안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겨야 하는데 나는 자꾸 스스로에 대한 이런 생각보다는 타인이 평가할 내 모습을 보며 스스로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타인은 내가 음식물쓰레기 거름망을 털어낸지 모를테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고양이 털을 쓸어담은지 모를 것이다. 타인의 눈에 나는 그저 놀고먹는 한량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관심없는 타인의 평가따윈 아무렴 상관없으나 혹여 내가 아끼는 사람마저 그런생각을 하게될까 지레 겁먹는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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