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책방 옆에는 어떤 캣대디분이 관리하시는 길냥이 급식소가 있다. 급식소가 있다는 것을 옆집 선생님께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이사온지 한달동안 눈코뜰새 없이 바빴기에 가본적은 없었다. 그러다 며칠 전 오전에 한가롭게 책을 읽으며 창앞에 앉아있었는데 웬 얼룩무늬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책방 앞을 지나 천천히 급식소 쪽으로 갔다. 성묘들은 몇몇 지나가는걸 봤는데 이렇게나 어린 아가는 처음봐서 마음이 많이 쓰였다. 급식소에 가보니 아까 그 얼룩무늬 아기냥이와 카오스냥이가 있었다.

급식소에는 건사료와 물이 있었는데 물이 너무 더러웠다. 얼른 들어가서 물을 갈아주고, 덤으로 습식캔도 한캔 뜯어서 조금 덜어서 가져다 주었다.

조금 경계를 하더니 엄청 허겁지겁 잘 먹는 녀석. 기특했다.  한 3개월 정도밖에 안돼보이는 정말 갓난애기다. 어쩌다 길생활을 하게됐는지 마음이 아팠다. 너무 천사같이 밥 먹는 모습에 이름을 지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름을 "꿈이"라고 지었다. 매일 밤 좋은꿈을 꾸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꿈처럼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밥그릇을 살펴보니 급식소에 있는 건사료가 알갱이가 좀 큰편이라 먹기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코 박고 엄청 잘 먹길래 조금 지켜보다가 편히 먹으라고 자리를 피해줬다. 몇시간 후 다시 가보니 깨끗이 비워져 있길래 그릇을 치워줬다.

다음날도 아이가 우리가게 앞 차 밑에 숨더니 꾸물꾸물 급식소로 걸어가는 모습을 포착했다. 그런데 그 때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기냥이 치고 배가 상당히 나와있었다. 복수가 찬 것처럼 배가 나오고 호흡할때마다 배쪽이 많이 꿀렁거렸다... 아무래도 아이가 아픈 것 같았다... 처음엔 임신인가 싶었지만 자세히 보니 아이기준으로 왼쪽배는 많이 안나왔는데 오른쪽 배는 거의 땅에 닿을 듯 말듯 쳐져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냥이가 엄청 천천히 걷고 움직임도 둔해보였다. 마음이 넘 아팠다. 아픈 몸을 이끌고 냥이는 저녁이 되기 전까지 두세번씩 급식소를 들낙거렸다.

인터넷에 "고양이 배" "배가 나온 고양이" 등으로 검색을 해서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찾아보고,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카페에 동영상도 올려봤지만 임신은 아닌 것 같다는 의견 외에 이렇다할 의견은 없었다. 병원에 가봐야 정확하겠지만, 병원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미안한 마음에 지금도 눈물이 난다. 처음본 아이지만.. 자꾸 생각난다. 아파서 무리에서 왕따당했을까, 아파서 주인에게 버려졌을까.. 이런 생각이 드니 나라도 잘 보살펴 주고 싶다는 마음이 한가득, 그러나  온전히 보살피기에는 병원비나 이후 상황이 너무 막막해서 도저히 자신이 안나서 너무 괴로웠다. 내가 너무 이기적인것 같고 이러다 꿈이가 죽을까봐 겁이났다. 그러나 큰 병이 아닐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 마음에 일단은 지켜보자고 마음을 정했다. 당장은 밥도 잘 먹고 잘 돌아다니니..

그리고 한 이틀이 지났나, 그저깨 쯤에 또 꿈이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꿈이는 한번 차가 다니는 길을 건너기 위해 몇 분을 기다린다. 차와 사람들의 발걸음이 다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인적이 드물어지는 틈을 타 길을 건넌다. 빠르게 지나가는 차를 피하느라 실패하고 뒷걸음질 치기를 여러번, 드디어 꿈이가 길을 건넌다.
늘 비슷한 방향에서 등장했기에 거처가 그리 멀지 않을 거라 생각이들어 일단 따라가 보았다. 혹시 돌보는 캣맘이 있다면 좀 이야기 해볼까 하는 심상으로 뒤따라 갔다. 그런데 웬걸, 10미터 정도 가더니 슈퍼 옆 실외기 뒤로 쏙 숨어버리는 꿈이.
빼꼼 고개를 들여다 보니.. 설마 여기서 지내나 싶을 만큼 좋지 못한 공간이었다. 냉장고인지 에어컨인지 모르겟지만 실외기에서는 건조하고 쾌쾌한 바람이 계속 나오고 있었고 또 실외기에서 나오는 열기도 만만치 않았다. 잠깐 피한거겠지 싶어서 며칠을 두고 봤는데...오늘도 역시나 들여다 보니 그 실외기 뒤에서 꼼짝않고 자고 있었다. 관찰결과 꿈이는 밥먹으러 나올 때 빼곤 실외기 밖으로 이동을 하지 않는다. 오늘은 그마저도 이동을 안하길래 내가 물과 밥을 조금 실외기 뒤쪽에 가져다 주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이 편치가 않다. 내가 그냥 이렇게 소극적으러 손을 내밀어도 될까 싶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병원에 데려가는 과정도 걱정스럽고 아는 동네 캣맘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싶다. 마음이 너무 슬프다. 꿈이가 올 여름을 잘 견딜 수 있을까..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를 돌아본다.  (0) 2018.06.20
관계  (0) 2018.06.11
독립책방으로 수익내기 첫달.  (0) 2018.06.06
벌 수 있을 때 벌자  (0) 2018.06.05
불꽃페미액션 상의탈의 퍼포먼스에 대해  (0) 2018.06.03
길고양이 못생겼다고 놀리지 마세요.  (0) 2018.05.27
소바먹고시프다  (0) 2018.05.22
하루  (0) 2018.04.16
자꾸 꿈을 꾼다.  (0) 2018.04.14
힘들어 죽겠다.  (2) 2018.04.0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