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작가의 책을 읽으며 잠시 내 유년시절로 돌아가 보았다. 내가 과연 충분한 고민을 하고 내 전공을 선택한 것이었을까? 과연 나는 이 일에 재능이 있으며 이 일을 즐거워 할까? 이런 여러 질문을 던지며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돌이켜 보았다. 의식의 흐름대로 두서 없이 써본다. 퇴고 따윈 없다. 걍 써재끼는 글.

중학생 시절 나는 13층짜리 아파트의 중간 7층에 살았다. 비가 오는 어느 여름날에 나는 창문을 반쯤 열어두고 난간 바로 옆에 붙박이 장에 등을 기댄체 미하엘 엔데의 장편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그 무렵의 장마철에 나는 비를 주제로한 노래를 들었다. 비처럼 음악처럼, 오늘같이 이런 창밖이 좋아, 리듬 오브 더 레인, 중딩 주제에 이런 류의 오래된 음악들을 들었다. (검색창에 '비를 주제로 한 노래'라고 쳐서 나오는 노래를 들었을 뿐이었다.)

그 때의 기억이 너무나 선명하다. 나는 그 날'행복하다'는느낌을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 날은 내게 행복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내 행복의 기준은 그 날과 같다. 내 행복은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별 다른 고민 없이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여유에서 오는 것 같다.

다시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되새겨 보자. 나는 그 시절(중1-2003년)에 독후감 쓰는 것을 좋아했다. 이 때 처음으로 내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연습을 의도치 않게 했던 것 같다. 독후감을 쓰는 것이 좋았던 이유는 단순하게도 독후감상문 노트를 예쁘게 꾸미는 것이 재미있어서였다. 난 그 때 독후감노트에 내가 제목을 지었다. '국어꽃 향기'라고 제목을 붙였다. '국화꽃 향기'라는 영화가 개봉했던 해였기 때문에 나름대로 패러디해서 정한 이름이었고, 독후감노트는 국어선생님이자 담임선생님이셨던 별망중 1학년 ?반(벌써 까먹) 박윤정 선생님께서 학기중에 자유롭게 써보라고 권하셔서 썼던걸로 기억한다.

나는 색지로 열심히 공책을 꾸민 후 아스테이지로 국어꽃향기노트를 감싸는 디테일까지 발휘해가며 노트 한권을 발행했다. 그렇게 열심히 꾸며놨더니 내용을 하나라도 더 채우고 싶어서 일부러 책을 읽었다. 중학교 때 읽었던 책들은 아직도 몇권은 대충 기억이 난다. 수학귀신, 단추전쟁, 파도, 끝없는 이야기, 모모, 황태자비납치사건(아빠꺼), 해리포터,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언니꺼),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언니가 빌려온거), 그 외에 언니가 빌려온 그 당시 이해하기 어려웠던 일본문학(뱀에게 피어싱 류). 나는 이런 책을 마음대로 읽고 내 마음대로 독후감을 썼다. 줄거리는 1줄로 요약해서 썼다. 나머지 몇장은 그냥 내 생각과 느낌을 적었다. 이해가 안가면 이해가 안간다고 썼다. 그리고 그 후로 선생님이 날 엄청 좋아한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칭찬받기 좋아하던 어린 강진영은 더 열심히 책을 읽었다.

선생님이 하루는 나와 어쩌다 교무실에 같이 갔는데 너는 어떤 종류의 책을 좋아하냐고 물으셨다. 그때 나는 '나'를 단지 어린이가 아닌 한 명의 성장한 인격체로 동등하게 대우해주는 선생님의 그런 질문에 매우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니 매우 감사하다) 나는 그 당시 책종류가 소설말고 또 있는지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그 때 아는게 소설밖에 없으니 소설이라고 답했고 선생님은 그런 내 말에 반가워 하시며 문학을 좋아하는구나 라고 하시면서 그러면 시는 안좋아하냐고 물으셨고 읽어본 적이 없다고 하니 그러면 앞으로 읽어보라고 말씀하시며 본인이 현재 읽고있는 얇고 가느다란 책을 꺼내 보이셨다. 그 때 나는 저렇게 짧은 시를 읽고 무언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다. 뭔가 시를 읽고 깨닫고 느끼는 선생님이 대단히 어른 같다고 느꼈다.(당시 선생님 나이는 현재의 나보다 어린 26세였다.)

그 때 나는 시와 소설을 문학이라는 생소한 단어로 부른다는 것도 처음알았다. 그렇게 중1때 또래 아이들에 비해 비교적 책이랑 가깝게 지냈던 것 같다. 그리고 28년 동안 나는 그 때의 기억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진다. 가장 창의적인 활동을 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책을 읽고 글을쓰고 그 글을 쓸 공간을 꾸미고 글 옆에는 삽화를 그렸다. 공책 한권을 가득 다 쓰고도 모자라 새로 한 권을 사서 또 꾸몄다. 정말 재미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억울한 것은 내가 그렇게 열심히 아꼈던 노트를 선생님이 수업 샘플로 가져가셨다는 것이다. 그 때에는 뭔가 선택받은 자(?)의 느낌이라 내걸 가져가시는게 좋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돈주고도 못살 그 노트가 너무 아깝게 느껴진다. 지금 보면 되게 웃길텐데...

혹시라도 이 글을 2003~2004년도에 별망중학교에 근무하셨던 박윤정선생님께서 보신다면 제 노트를 찾아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ㅋㅋ 고등학교 가고 나서도 종종 연락하고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번호가 바뀌셨는지 연락이 안된다. 뵙고싶은데.. 아마 지금쯤 40대 초반이실 거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완전 언니뻘이다. 나랑 알고 지내는 언니들이 39세이시기도 하니까.. 보고싶어요 쌤..! 내 생에 유일한 은사님을 떠올리면 난 박윤정 선생님 밖에 안 떠오른다 ㅎㅎ 내 사고관이 많은 영향을 주신 것 같다.

아무튼 나의 그 중딩시절이 내가 가장 나다웠던 시기였던 것 같다. 집에 와서 책만 읽은 것은 절대 아니다 컴퓨터를 제일 많이 했다. 하루에 열시간씩 컴퓨터를 하기도 했고 서너시간은 기본이었다. 학교에 갔다와서 집에오자마자 4시쯤부터 버디버디를 켜고 게임을 시작해서 저녁8~9시 까지 컴퓨터를 하기도 했다. 그치만 컴퓨터 한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중독이 맞긴 했지만 나름대로 유익했다고 본다. 그 시절이 어쩌면 생산성 면에서 가장 쓸모없던 시절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가장 행복했고 또 즐거웠던 시절이다. 감성충만 중딩 강진영은 그 때부터 주절주절 잡다한 일기를 많이 썼다. 주변 친구들은 그런 내 일기 훔쳐보는 것을 좋아했던걸로 기억한다. 내가 볼 때 웬만한 학생들은 다 글을 잘 쓴다. 그런데 그걸 누가 보게 쓰는지 안보게 쓰는지 차이인 것 같다. 나는 독자가 있다고 예상하는 글 쓰기를 더 재밌어 했다. 기본적으로 소통을 좋아하는 아이였던 것 같다. 서로의 생각이 공유되어지는 소통의 과정을 즐거워 했던 것 같다. 아니면 관종이었거나. 난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여지는 것은 일종의 자기 브랜딩이고 이를 긍정적으로 활용하면 얼마든지 스스로에게 좋은 원동력이 된다.


아몰라 왜 뻘소리를 이렇게 많이 썼지. 아무튼 난 글을 읽고 쓰고 의견을 주고 받을 때 행복하다. 디자인도 그런 내용을 포함하긴 하지만 디자인 자체로는 그 역할이 주가 되지 않는 현실이다. 한국 사회에서 적어도 내가 만나는 클라이언트를 대할 때 느낀 것은 그들에겐 디자인이 예쁘게 보이는 것 그러나 비싸면 안되고 적당히 싸야지 할 수 있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비싸면 싼 디자이너를 찾아서 하면 되는 것. 그 수준이다.

아무튼 그렇다.
씁슬하다. 난 이 직업을 평생하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면 난 어떻게 경제활동을 하며 살아야하나. 고민이 필요하다. 이걸 평생 하면 난 진짜 일찍 죽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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