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이상하다.. 할머니댁에 들어오니 할머니가 냉장고 문을 열어 둔채로 그 앞에 멍하니 앉아계셨다. 냉장고는 문을 닫아 달라고 삑삑 소리를 내고 있었고 할머니 손에는 두부그릇이 있었다. 입주변엔 두부 부스럼이 묻어있었다. 좀 전까지 먹고 있었던게 분명했다. 할머니가 내 인기척을 못들으셨는지 날 쳐다보지 않으시길래 내가 "할머니!!! 할머니!!!" 이렇게 할머니를 여러번 불렀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촛점 잃은 눈으로 멍하니 올려다 볼 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눈은 반쯤 감겨있었고, 한눈에 봐도 멀쩡한 상태가 아닌것 같았다. 여러번 부르고 흔들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너무 무서웠다. 육체는 깨어있으나 정신은 잠든 상태 같았다.

그러고도 한참동안 할머니는 나를 못알아 보셨다.... 누구냐고 그러고, 여기 자러 왔어요? 라며 내게 존댓말을 했다. 나는 놀래서 "할머니 나 진영이라고!!" 했더니 "진영이는 어디갔어? 같이 안왔어?" 라고하셨다. 내가 나 여기있다고 외쳐도 할머니의 촛점잃은 눈은 내 얼굴을 바라 보고 있으나 진영이를 알아보지는 못했다. 평소에도 보청기 빼시면 잘 못알아 듣지만 그래도 정신은 멀쩡하셨다. 귀가 안들려서 대답을 못하시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상태임을 한 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평소에 잠을 잘 못주무셔서 수면유도제를 처방받아 드신다. 그러다 잠이 안오시는 날에는 두 알씩 드시기도 하신다. 평소에는 이런 증상을 보인 적이 없기에 그저 내 추측으로는 졸피뎀 부작용이 아닌가 싶다. 졸피뎀이 식욕을 증가시키고 그런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그런 부작용의 일환으로 할머니가 반쯤 잠든 상태로 이상한 행동을 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할머니가 하나님 곁으로 가시는 날까지 건강하게 행복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지켜주셨으면 좋겠다..

놀란 맘을 진정시키고 할머니를 방안으로 모셔다 드렸다. 내가 진영이라고 여러번 주장해서 할머니는 드디어 내가 진영이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내가 진영이랑 같이 있는거야?"라며 되물으시더니 정신이 돌아오신 듯 해 보였다. 물 한잔을 드리고 일부러 여러 말을 건넸다. 어제 교회는 다녀왔는지, 오후예배는 드렸는지, 이모는 다녀 갔는지 이것 저것 물었다. 조곤조곤 대답도 잘하시고 웃으시기도 하시는 걸 보니 이제 정신이 완전히 돌아온 것 같았다. 내가 "할머니 좀 전에 자고 있던거야?" 라고 묻자 "안잤어. 잔게 아니고 자려고 누웠었는데.. 근데 내가 저기를 뭐하러 갔는지 기억도 안나"라고 하셨다. 마음이 아팠다.

할머니가 혼자 외로우시진 않았을까 싶은 마음에 할머니를 눕혀드리고 할머니의 고운 얼굴과 손을 쓰다듬고 머리카락을 쓰담쓰담 해드렸다.
"여태 일하다 왔어? 뽀얘서 나가더니 왜이렇게 까매졌어?" "할머니 내가 화장이 다 지워져서 그래.."
그리고는 그런 내 얼굴을 쓰다듬어주시며 돌연
"언니가 이쁘니 니가 이쁘니?"
"내가 더 이쁘지"
"누구는 언니가 이쁘다 하고 누구는 너가 이쁘다 하고.."
할머니는 이런 말들을 하시며 미소 지으셨다. 할머니가 방금 전 까지 내 얼굴을 못알아봤던게 다시 생각나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 할머니는 웃을 때가 가장 예쁘다. 소녀같이 맑은 우리 보옥 할머니. 할머니가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내 못생긴 얼굴을 오래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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