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소한 일상]
엊저녁부터 갑작스레 심해진 감기를 핑계삼아 느즈막히 일어나 TV를 보는데, 이만기 아저씨가 칼국수를 정말로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나왔다. 반죽만 잘하면 만들기 쉬울것 같았다. 그래서 점심으로 칼국수를 해먹고말겠다는 심정으로 호기롭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반죽을 어떻게 하는지 물으려고 했는데, 엄마는 내 갑작스런 칼국수 타령에 어이가 없다는 투로 그냥 가게로 오라고, 사주겠다고 하셨다.

직접 해먹고 싶기도 했지만 사실상 기력이 딸리기도해서 대충 준비하고 가게로 내려갔다. 가게 근처에 있는 칼국수 집으로 걸어가며 같이 아빠 흉을 보았다. (난 가정의 평화를 위해 아빠와 단둘이 있을때는 아빠편을 들어주는 야무진 딸이다.) 소담소담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니 추위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점심때가 다 지난 세시쯤 도착한 식당에 들어서며 쉬셔야 할 시간에 와서 죄송하다고 엄마가 직원분께 말을 건넸다. 난 엄마의 이런 모습이 자랑스럽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넓은 식당 한켠에 자리를 잡고 해물 칼국수 2인분을 시켰다. 생각보다 깔끔하고 푸짐한 상차림에 연신 기뻐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깊게 웃었다. 엄마랑 밥을 먹는 내내 나는 너무 행복했다. 정말로 행복해서 엄마에게 "행복이 별게 아니야, 지금 너무 행복해!"라고 서너번은 말한 것 같다. 엄마는 "행복을 아는 것 보니 우리딸 다 컸네"라며 또한번 깊게 웃었다.

우리는 뜨뜻하고 칼칼한 칼국수 국물을 몸안 가득 채우고 느긋느긋 밖으로 나왔다. 가게로 돌아오는 길에 디씨마트에 들려서 삼천원짜리 휴지통 두개와 천오백원짜리 유리잔 네개도 구입하였다. 엄마와 나는 음료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새로산 싸구려 유리잔에 얼음 두개를 띄워 오렌지쥬스를 담아 먹으면 너무 좋겠다고 호들갑을 떨며 마트를 빠져나왔다.

디씨마트에서 가게까지 걸어오는 길에는 작은 호수공원이 있다. 호수의 물은 일정 부분 얼어가고 있었는데 엄마와 나는 물이 정말로 벌써 얼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그저 며칠뒤면 다시 녹아버릴 것인지, 이 호수의 물은 왜 올때마다 높이가 다른것인지 따위의 대화를 늘어놓으며 공원을 거닐었다. 공기는 차고 호수는 얼어가고 있었지만 내 맘은 어느때보다 따뜻하고 행복했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속이 쓰리다.  (0) 2015.01.02
스키장 가고싶다.  (0) 2014.12.22
텅빈 버스  (0) 2014.12.16
바야흐로 연말이다.  (0) 2014.12.16
쿼바디스 김재환감독 인터뷰  (0) 2014.12.15
농익음  (0) 2014.12.10
날짜감각  (0) 2014.12.10
갖고싶다.  (0) 2014.12.08
눈이 내리는 겨울  (0) 2014.12.08
행복  (0) 2014.12.0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