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주의 사회를 부추기는 요즘의 분위기에 대한 나의 생각
서점에 갔다. 베스트셀러 자리에 꼽혀있는 책들을 보며 속이 거북해졌다.
경제학과 경영학의 논리로만 청춘의 삶과 이 세상을 바라보는 그 책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모든 사람들이 경쟁사회로 뛰어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 철 없는 아이가 설마 아직도 있냐는 식으로 모든 상황을 전제해버리는 것 같다. 경제학의 논리로 볼때, 같은 상황에서 인간은 보다 이익이 되는 쪽을 선택해야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효율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논리를 밑바탕에 깔고 시작한 수 많은 자기계발서들은, '당연히 우리는 보다 나은 것을 성취해야하기 때문에, ____를 해야한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삶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 의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그저 어떻게 하면 이런 경쟁사회, 성과주의 사회 안에서 개인의 삶을 발전시켜 나갈것인지에 대해 삶의 행동과 태도뿐만아니라 심리적측면까지 일방적으로 조언한다. 그러면서 묘하게 경쟁과 성과주의가 난무한 현 사회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도록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려버린다. '너 왜그렇게사니?(독설), 근데 괜찮아 모두가 그래(위로). 너가 이렇게 저렇게 조금만 더 노력하면 돼(조언). 할 수 있어(긍정). 힘을 내!' 라고.
물론 때때로 이런 조언들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힘이들고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증에 빠져있을 때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인생의 선배 혹은 멘토'들의 '독설과 조언'을 듣고 있자면 은근히 위로도 되고, '나만 그런게 아니라 모두가 그렇구나'라며 함께 책을 읽거나 강연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묘한 '동지애'를 느끼게 된다. 내가 가지고있던 불안이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알고 '안심'하는 면도 있다. 나만 그런것 아니니까 힘든 소리, 부정적인 생각하지말고 좀 더 열심히하자! 으쌰으쌰! 강진영 화이팅! 이런 외침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긍정적인 동력'을 얻기도한다. 그러나 과연 이런 경위로 얻게되는 '긍정'이 정말로 우리 삶에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
독일에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책 '피로사회'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이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다'는 의식은 '파괴적 자책과 자학으로 이어진다.' 우울증은 '긍정성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서, 자기 자신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간을 반영한다.- 28p,피로사회,한병철 저,문학과 지성사]
현대사회는 '너가 ~를 하기만하면(성과를 내야), 너의 삶이 바뀔 수 있을거야(삶이 바뀐다)'라고 말한다. 단편적으로 들었을 때 얼마나 희망적인 메세지인가. 그런데 실제로, 노력을 해도 성과를 내기가 상당히 어려울 뿐만아니라, 어렵사리 성과를 낸다 하더라도 크게 변하지 않는 삶(또다른 성과를 위해 또다시 미쳐야 하기에.)을 살게되다보니 사람들은 사회가 말하는 바와 자신의 상황에 괴리감을 느끼면서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그런점에서 현대의 우울증은 피폐해진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일정부분 사회에 책임이 있는 문제이다. 열심히 해보자며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알게모르게 우울증을 앓게되는 아이러니한 사회가 현대사회이다. 주변의 끊임없는 '할 수 있어' 속에 오히려 더욱 지쳐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10대, 공부에 미쳐라','20대, 공부에 미쳐라','30대, 공부에 미쳐라', '50대, 다시 공부에 미쳐라'. 이런 시리즈의 책이 있다고한다. 결과적으로 평생을 공부에 미치란 소리인데,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모른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여기 저기에 미쳤던 사람들은 그렇게 얻은 성과로인해 안정감과 행복을 얻게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불안함을 얻기도하고, 그로인해 실제로도 미쳐버리거나 우울해져 버리는 경우도 많다. 반드시 사회가 요구하는 성과를 얻어야지만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부터 노력해야 개인의 삶이 바뀌고, 개인의 삶이 바뀌어야 사회가 바뀐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언제나 적용되지는 않는다.
내가 노력해도 성과를 내지 못하기에, '이건 더이상 내탓이 아닌 사회탓이야'라고 변명하며 책임을 전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분명하게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개인에게만 책임을 집중시키는 현대 사회의 풍토가 불쾌할 뿐이다. 이런 생각들 때문인지, 수많은 자기계발서들과 수많은 멘토들의 강연이 죄다 (심하게 말하면) 쓰레기로 보인다.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보거나 고민해보기도 전에 쏟아져 나오는 독설과 조언들 때문에 판단의 기회조차 날려버리는 일부 가녀린 청춘들의 모습을 보며 속이 쓰리다. 교묘하게 힐링 혹은 멘토라는 탈을 쓰고 성과주의를 부추기는 책과 강연을 보고있으면 구역질이 올라온다. 청춘들을 향해 흐뭇하게 웃고있는 책의 표지와 강연 포스터들이 상당히 못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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