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일에 광주에 내려갔다. 


사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공휴일을 맞아 그동안 한번 쯤 다시 가보고 싶었던 광주에 간다고만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 날이 3.1절이었다. 3.1절과 광주. 저항의 상징인 날에 저항의 상징인 도시에 간 셈이다. 또 기독교적으로는 사순절[각주:1] 첫날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참 의미가 깊은 이 날에. 여러 우연과 작은 계획들, 그리고 약간의 충동이 겹쳐 광주를 방문하게 됐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저항운동이었던 3.1운동을 기억하며, 또 5월의 광주를 기억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억하며 광주 곳곳을 거닐었다. 내가 방문했던 광주의 양림동은 지난 세월과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곳이었다. 




광주 양림동에는 선교사 묘역이있다. 유진벨 선교사님을 비롯한 수많은 선교사님들의 묘비와 그들의 자녀로 추청되는 작은 묘비들을 보며 마음이 참으로 헛헛했다.  그 시절 선교사님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이 척박한 땅에 복음의 씨앗들이 자라고 성장했다. 그치만 나는 그들의 이름조차 잘 모른다니......ㅋ 참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과연 그 헌신과 결심을 이어가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 것일까.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추방당하기 까지 했던 유진벨 선교사님과 일제에 저항하며, 투쟁하며 죽어갔던 수 많은 기독교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보며 나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나는 저 수 많은 묘비 앞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민족과 나라를 위해 행동하며 기도하고 있는가.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앞에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는가. 이익과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하나님을 모르는 삶보다 더 악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됐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회의적인 냉소주의를 버려야 한다. 이 땅에 잠시 있다가 지나가는 나그네이므로 이곳의 일에는 깊이 관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런 생각은 하나님이 주신 수많은 명령과 권고를 쓸데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는 잠시 이 땅에 머물지만 머무는 동안은 최대한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살고 행동해야 할 사명을 받았다. 비록 그런 노력이 큰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노력 자체를 포기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를 위한 행동이다. (김근주 외 15인 공저, 정치하는 교회 투표하는 그리스도인, 새물결플러스, 2012, 35p)


요즘 우리 교회 사회선교부에서 함께 읽고있는 '정치하는 교회 투표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에는 나오는 내용이다. 내게 주어진 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나는 앞으로도 평생 고민하며 살 것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든 나 한 사람의 힘으로 무언가 바뀔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책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노력 자체를 포기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기에 적어도 내 마음대로 삶을 재단하고 계획하여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이 사회에 담을 쌓고 사는 어리석은 그리스도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부단히 저항하는 노력을 평생의 업으로 삼으며 살 것이다.





  1. 부활절 전까지 여섯 번의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의 기간을 말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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