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이랑은 함께할 수 있지만
함께할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사람과는 함께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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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말처럼. 예술작품은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에 열려있어야 한다. 또한 그 예술작품을 누군가가 혐오하는 것에도 열려있어야 한다. 예술가가 여성을 대상화 하는 작업을 한다면 그 작업 자체를 비난하고 비판 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를 범죄자로 매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그의 전시를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막는 것도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로타의 작업물 일부는(전체를 다~본적은 없기에) 여성혐오적이다. '로타'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작업물들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특성을 보면 그는 순백의 순수한 여성, 아무것도 모르는 여성, 순종적인 여성, 무력한 여성의 이미지를 소품과 장소를 활용하여 부각시켜 표현한다. 흰 피부결과 파스텔톤의 색감 그리고 때때로 사용되는 학생의 이미지. 이 것은 단순히 미성년자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문제가 되는 것만은 아니다. 이는 다분히 남성중심적인 성고정관념(성녀와 창녀로 여성을 구분하는 것*)을 담아낸 결과물이고 남성들의 그런 이분법적인 사고가 이 시대의 여성들을 억압한 주 원인이기 때문에 여성혐오적이라는 것이다.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의 말을 빌리자면 남성들의 이분법적인 사고안의 성녀란 어머니와 아내이다. 창녀란 성적 만족을 위해 만나는 여성, 즉 쾌락을 위한 존재이다. 성녀로 칭송받는 여자들은 창녀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를 검열하며 억압속에 살아간다. 억압을 정조라 여기며 순결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창녀로 취급받는 여성들은 두 말할것도 없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박탈당함과 동시에 억압받는다. 또 두 여성들은 서로를 각기 다른 부류라고 여기고 각자의 영역안에 갖히게 된다. 이는 모두 결국에는 남성들의 이분법적 여성관에서 기인하게된 결과이다.

로타의 작업물에서 비춰지는 여성은 이러한 성고정관념이 다분히 느껴진다. 다시 우에노 시즈키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여성의 성적 자유도가 전보다는 높아진 요즘시대에는 성녀와 창녀의 구분히 모호해지기에 남성들은 자연히 상대적으로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어리고 순수해 보이는 여학생을 성녀화 한다. 로타의 작업물의 어리고 어리숙해보이면서도 도발적인 여성들은 이런 성녀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느껴진다. 나만을 위해 복종할 것 같은 그런 여자의 이미지. 남성들이 원하는 여성의 이미지이다.

나는 이런 이분법적 성고정관념에 근간하는 작업물이 못마땅하고 불편하다. 그러나 내가 싫다고해서 그의 작업을 훼손하거나 전시를 방해할 권리는 물론 없다. 하지만 비판할 권리는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사실 주변에 로타가 왜 문제가 되느냐고 말하는 '여성'들이 적잖이 있다. 내 생각에는 그런 여성들은 이미 로타의 작업물 속 여성을 자신과 전혀 다른 제3의 인물로 '타자화'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별 생각없이 자연스럽게 소비되는 이미지 중 하나로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진일 뿐이다. 여성 아이돌을 보듯 그렇게 보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히 무심코 소비하는 수 많은 대상화된 여성들의 삶은 결국 자신의 삶을 억압하는 족쇄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그 여성들은 알아야 한다. 유리천장은 갑자기 짠-하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무심코 유리조각을 직접 쌓아왔다.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일조하고 싶지 않다. 아니 나는 지금껏 내가 일조한 모든 여성혐오에 참회하는 마음으로 내가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저항하며 유리천장을 쳐 부술것이다.


*​사회학자 우이노 지즈코는 그의 책에서 이를 '남성에 의한 성녀와 창녀의 분단지배'라고 표현했다.

*참고: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제3장 '성녀'와 '창녀'의 타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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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른 왜이렇게 깨달음을 좋아할까.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 부분까지 무언가 해석해내려 하고 의미를 부여하려하고 메시지를 끼워맞춰 깨달음을 얻으려고 한다. 일종의 간증병에 걸린 것 같다. 깨닫는 것도 좋지만 때때로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을 보이는대로, 들리는 것을 들리는대로 그 자체에 집중할 수는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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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파도가 이는 강이 있다. 강의 너비는 좁아졌다/넓어졌다를 반복한다. 이를 넘나드는 나룻배가 몇 척 있지만 그저 하루에 두어번 다녀갈 뿐이다.

강물에 휩쓸려 무언가 떠내려 간다. 때때로 강물은 떠내려가는 사랑을 실어와 강 건너에 밀어 넣는다. 누가 언제 실어왔는지도 모르게 밀어 넣는다.

물살이 센 어느 오후에는 한사코 노를 저어도 강을 건널 수가 없다. 그런 날에는 그저 가만히 물살이 잦아들길 기다린다. 그저 가만히 강 건너를 바라본다. 한참을 그러다가 뭐라고 소리친다. 메아리가 강 주변을 멤돈다.

강물에 휩쓸려 또 다시 무언가 떠내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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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나는 이미지들 사이에서 살아가기란 생각보다 고달프다. 큰 범주로 보면 나도 이미지로 먹고사는 디자이너이지만 요즘같아선 정체성에 혼란이 올 만큼 사진이나 이미지화된 모든 것에 넌덜머리가 난다. ​필요 이상으로 쏟아지는 이미지들. 이미지에 값을 매길 수 있다면 매일같이 인터넷에 쏟아지는 이 수많은 이미지들에 조심스럽게 0원을 적어내겠다.

페이스북만 봐도 참 많은 사진들이 난무하는데, 내가 보기엔 다 한 사람이 올린 것 처럼 특별함이 없다. 물론 사진이나 글이나 몇초 보다가 엄지에 떠밀려 넘어가는 신세인건 마찬가지이지만 글의 경우라면 적어도 몇 사람은 엄지를 잠깐 멈추고 생각이라는 걸 하게만들지 않을까싶다. 지금 여러분이 그러는 것 처럼.

그래서 결론은. 글만 쓸 수 있는 sns가 있으면 좋겠다. 페이스북 사진기능이 사라지던지. 그러면 우리들이 노랗게 필터링된 억지감성이 아닌 진짜 감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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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신발 그리고 화장실.

사람을 볼 때 손톱(혹은 손 자체)과 신발의 상태를 보게되고, 집이나 개인 사무실을 방문하게되면 화장실을 눈여겨 본다. 청결 상태를 확인한다기보다는, 각 사람만의 소소한 생활습관들을 관찰한다. 이런 사소한 습관 속에서 묻어나오는 성향은 대체로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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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던 것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문장에 쓰이는 낱말들이 그렇고, 침대가 아닌 곳에서 바라보는 내 방의 풍경이 그렇고, 가까웠던 사람의 새로운 모습이 그렇다.

잘 안다라는 것은 익숙함일지 고정관념일지. 어찌되었든 그리 쉽게 내뱉어선 안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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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하기 어렵다. 뭘 믿어야하는지 알 수 없다. 믿을 것은 하나님 뿐인가보다.

그동안 난 뭘했나. 기껏해야 엄지손가락 두개로 화면 위아래로 슬쩍슬쩍 굴리며 갖가지 확인되지 않는 메세지와 의혹들 앞에 휩쓸리고. 마치 하나의 이슈를 대하듯, 그렇게 감정적으로만 이 문제를 대하지는 않았나. 스스로 돌아본다. 끔찍이도 부끄러운 나의 모습.

침대에서, 버스에서 기껏해봐야 핸드폰 들여다보는 것이 전부이면서. 이렇게 행동하고있으면서 나는 이 사태에 관심갖고있다고 스스로 위안하는 것도 상당히 부끄럽다. 이 이상 할 수있는게 무엇인지 고민해본적도 없이. 일부를 비난하고, 동요되고, 분별하지 못했던것을 반성한다.

모든것을 잠시 접어두고 하나님께 더욱 기도로 깨어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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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대해, 또 그 주변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농도가 짙다.

농도 짙은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그 사람 만큼이나 뚜렷하다. 흐리멍텅해서 어느 것 조차 분명하지 않은 사람들과 구별되는 명확함. 나는 이런 것에 큰 매력을 느낀다. 가슴이 뛴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농도 짙은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어떤 색을 지녔든 그 농도가 분명해서, 가만히 있다간 그 색에 빨려 들어가버릴 것 같은 기분. 그래서 애써 나도 나의 색을 찾게되는 그런 만남.

성숙한 사람은 그렇게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에게도 그 영향력을 미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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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을 함께 보내고, 함께 자라 온 친구. 그 때는 서로를 쉽게 인정해주고 서로의 생각이 다른 것을 그리 문제거리로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은 생각이고, 친구는 여전히 친구인 것이기에.

물론 지금도 여전히 그것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전과 다르게 지금은 상대방의 어떠한 성격이나 가치관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하게되는 경향이있다. 이 부분에있어서 상당히 부끄럽다.

어릴적, 친한 친구가 되기 위해 고려될 점이라곤 집 방향이나 같은 반인지의 여부 처럼 참 단순한 조건들 뿐이었는데. 물론 그때와 지금을 비교한다는 것이 아주 우스운 일일지도 모르나, 참 많은 조건들을 알게모르게 내세우며 관계의 잔가지를 쳐 내는 모습들에 슬프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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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치킨을 사이에 둔 지인과의 대화에서 나는 많은 것을 깨달았다.

여지껏 누군가와 대화할 때의 내 모습은 대단히 이기적인 모습이었다는 것을. 이런 멍청하고도 이기적인 나란 인간은 대체 누구인가.

그는 나에 대해 아무런 충고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삶의 방식을 들으며 내가 대단히도 잘못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리고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나는 여지껏,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누군가를 만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와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논쟁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사람이란 웬만해선 변하지 않고, 내가 누군가의 의견에 반박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변할 것 같지 않다면 굳이 애써서 그런 수고를 감당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그렇게 각자의 생각대로 삶에 충실하면 될 뿐 굳이 생각이 같을 필욘 없다고 여겼다. 덕분에 관계의 깨어짐을 경험한 적은 거의 없다. 의견의 대립조차 경험한 적이 많지는 않다. 그럴때면 '개인의 취향과 생각을 존중'하자는 말로 마무리 짓고 그 상황에서 빠져 나오곤 했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다른대로,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곤 했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달라. 그치만 모든 사람의 생각이 다 같을 순 없지.' 이런 생각이 내 모든 인간관계 안에서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었다. '나와 전혀 다른 별개의 존재'로써 상대방을 대한다면 크게 실망할 일도, 크게 화날일도, 크게 싸울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사고의 구조와 다른 상대방에게 내 방식의 사고를 강요하는 것은 무의미 하다고 생각했다.

여지껏 내가 가져왔던 이런 생각은 어떻게보면 참 맞는 말 처럼 느껴진다. '너는 내가 아니고 나는 네가 아니기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러나 이런 생각을 가진 나는 진정으로 누군가의 생각과 마음에 공감할 수 없다. 겉으로는 문제 없어보이는 관계의 이면에는 철저히 상대방과 나를 분리시키고 섞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섞이기 위한 갈등조차 원하지 않는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생각의 차이일뿐 누구하나 틀린것이 아니기에.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나 이건 명확히 말해서 상대방을 향한 관심의 부재다. 상대방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이다. 그러나 나는 상대방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굳이 그 이유를 듣지 않는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을 뿐더러 듣는다고 내 의견이 달라지지 않을 것을 알기에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어쩜 이리도 무섭고 이기적이고 무정한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미치도록 실망스럽다. 심지어 이 사실을 여태 뚜렷하게 알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도 부끄럽다. 나라는 사람은 미치도록 한없이 멍청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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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이지 못하면서 논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목소리가 크다는 점(흥분할 경우 목소리 톤이 높아지거나 전과 달라진다.)과 자신이 대단히 논리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점. 그리고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는 점. 이렇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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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어제가 되어버린 오늘. 난 새벽이 되면 유난히 이 표현을 즐겨 쓴다. 어제가 되어버린 오늘. 새벽은 어제와 오늘이 공존하기 때문에 특별하다.

오늘 많이 피곤한 하루였다. 선생님 오프닝 있는 날이어서 바쁘게 움직여야했다. 하루 종일 현기증과 편두통이 나를 따라다녔다. 집에 오자마자 잠들어도 모자랄 판국이지만 잠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갤러리 이사장이라는 분이 대접해주신 라떼 덕분이다.

대낮에 먹은 커피효과가 이 늦은 새벽까지 효력을 발휘하다니 나는 정말 커피랑은 담쌓고 살아야 하나보다......커피 맛있는데 슬프다.

새벽이 왔으니 새벽답게 사색을 즐겨본다. 사색이라 말하기도 민망해서 보통 나는 이런 활동을 통칭 '잡생각'이라한다. 생각이라는 것은 무지하게 즐겁고 창조적인 취미이다. 아무런 도구도 필요없기에 굉장히 편리하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얻는 것도 상당하다. 머릿속에서 막연히 떠다니던 내 생각의 조각들이 이 시간을 통해 하나의 의견으로 정리되어진다. 흘려지나보냈던 생각들, 언제고 다시한번 생각해봐야겠다 여겼던 문제들, 감명깊게 다가왔던 외부의 요소들에 대한 나의 느낌과 생각이 정리되어지면서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사고의 깊이가 깊어지고 그 넓이가 확장된다.

스스로의 의견에 대해 좀 더 깊이있게 알고있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누군가 어떤 상황이나 현상에 대해 나의 의견을 물었을 때, 때때로 나는 당황해서 뭐라고 말해야 할까 0.1초 고민함과 동시에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서 설명하곤 하는데 (이마저도 안될 때는 생각의 필터링이 없이 그저 머릿속의 스치는 내용이 마치 나의 생각인것 처럼 이야기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기도한다.) 이 때 말실수를 한다거나 뜬금없는 의견을 말할 적이 부지기수다. 사실 앞과 같이 내 의견이 무엇인지 나조차 생각해 본적이 없는 상황에서 횡설수설하지 않고 명료하게 어떠한 의견을 말 할 수있는 능력은 의견의 전달이라기보다는 임기응변에 가깝다. 묻고 답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생전 생각해본적도 없는 일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그 생각 안에 개인의 주체적인 생각이 온전히 담기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것도 하나의 의견이 되기는 하겠지만 대개 일차원적이거나 순간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임기응변에 능한 것은 물론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시간이 있을 때 조금 더 생각하고 그 생각을 미리 정리 해본다면 임기응변식의 대답보다는 보다 구체적인 의견을 이야기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과의 대화에서 구체적인 내용의 의견을 전할 필요는 없겠지만, 간혹 있을 깊은 대화를 위해서 만이라도 이러한 준비는 유익하다 생각된다. 이렇게 준비된 생각들은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대화를 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나의 생각을 전할 수 있도록 대화의 밑거름이 되어준다.

비단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할 때가 아니라할지라도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개인의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된다. 생각을 전개해 나가다보면 자신의 오류가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게되기 때문이다. 혼자 생각한다지만, 자신의 철학에 스스로가 지나치게 심취되어 있는 모습은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물론 상황과 사람에 따라서는 그런면이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경우도 있겠다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한 발 멀리 떨어져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시간을 통해 오류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사실 위와같은 과정을 거친다 할 지라도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모든 문제가 풀리지는 않기 때문에 여전히 풀리지 않는 오류들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나(물론 개중에는 분명 생각의 정리를 통해 해결되는 문제들도 많다), 적어도 내가 어떤 부분이 어렵고 어떤부분에서 속수무책인 상황이 되는지 혹은 앞으로 이런 문제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기도하며 나아가야할지 그 방향을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만큼은 긍정적이라고 본다. 더 쓰고싶지만 어느새 새벽이 깊었기에 급 마무리 지어 요지를 밝히자면, 그러므로 내 잡생각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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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실망은 일방적이다. 일방적으로 기대해놓고 내 기대에 상대방이 부응하지 못한다고 실망해선 안된다.

일단 사람을 두고 기대를 할 때 어떠한 결과를 염두해 둔 기대라면 그 기대 자체가 순수하다 할 수 없다. 진정 상대방을 두고 기대한다 말할 수 있으려면 있는 그대로, 그 결과에 상관없이 그 사람을 믿어줄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대체로 사람들은 상대방이 나에게 기대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때 부담을 느낀다. 하지만 이 때 부담을 느끼는 이유는 그 기대에 상응하는 결과를 나타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 누군가를 두고 기대한다는 것은 비단 결과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기대한다는 표현을 좋은 결과를 내라는 뜻으로 사용하기 보다는 결과에 상관없이 나는 너를 믿고 너를 응원한다는 고백의 말로 사용해야 함이 옳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 멋대로 기대해놓고 멋대로 실망하는 만행을 저지르지 않도록, 상대방의 어떠한 모습과는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그를 믿어주고 웃어줄 수 있는, 그런 자세로 누군가를 기대해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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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도 중력이 있는가보다.

이리저리 기울여봐도 결국 변하지 않는 방향.

 

잔에담긴 물처럼 용기를 바꾸어봐도, 흔들어 봐도.

순간적으로 방향이 변하는가 싶더라도 어느새 다시 원래의 방향을 유지한다.

흔들거리다가도 이내 잠잠히 같은 곳을 향해 마음을 쏟는다.

 

결국 나의 마음은 한 방향으로 쏠리게 되어있다.

내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도 싫다고 말하려해도 결국에는 늘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날 끌어당기는 알 수없는 그 힘 앞에서

이제는 별다른 도리가 없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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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으로 스며들어와 살포시 의자 위에 앉은 네모난 노을. 여름과 같이오느라 전보다 부쩍 늦어진 시간이지만 오늘도 제법 정확한 시간에 그 자리에 앉는다.


한 낮의 기온이 21도. 봄이 가기전까지 익히기로 마음 먹었던 루시드폴의 '봄눈' 기타 연주는 마지막 소절에서 애를 먹고 아직 끝내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식으로 봄이 가버리면 나는 참 아쉽다. 성별로 따지면 봄은 분명 여자일 거야. 그것도 변덕스럽고 새침하기 일색인 20대 초반의 여자.


이 봄이 가버리기전에 비라도 한 차례 더 내렸으면. 거센 비가 움을 티우려고 벼르고있던 땅 속의 생명들을 깨우고, 그 소리에 나도 덩달아 신이나서 하늘을 뚫어버릴 기세로 한바탕 기지개를 켜고 쭈우욱 일어서고 싶은 마음이다.


다행히 이번주 금요일엔 비소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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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바로 강진영>

 

스물 두살의 여자가 있었다. 이름은 강진영. 언제나 세상을 살면서 골똘히 생각하는 것을 취미로 하는 여자이다. 그녀는 다양한 종류의 생각을 한다. 여러 빛깔 생각으로 삶을 즐긴다. 그녀는 비가 오는 창문을 좋아한다. 비가 거세게 오면 그녀는 눈을 감고 빗소리를 즐긴다. 바닥에 투덕투덕 내리 꽂는 빗줄기 소리. 그 소리는 마음을 두드린다. 마음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흡사 타자기 소리처럼 맑고 경쾌하다. 타자기를 두드리는 소리 또한 비슷한 의미에서 그녀가 좋아하는 소리이다. 그녀는 타자기 소리를 듣기위해 일부러 의미 없는 단어들을 연결 해보기도 한다. 그녀는 그런 여자였다.

 

진영이는 지금 타자기의 시옷자를 쳐다보고있다. 시옷자는 사람인()자를 닮았다. 그리고 산 봉우리 모양과도 닮았다. 혹은 콧수염 같기도 하다. 그런 생각들을 이어가며 진영이는 시옷자를 쳐다본다. 시옷이 눈앞으로 튀어나왔다. 시옷이 둘로 갈라졌다. 둘로 갈라진 시옷이 춤을 춘다. 춤을 추는 둘로 갈라진 시옷은 그녀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내 말을 잇지 못하고 특유의 종종걸음으로 걸어가 그녀의 널따란 책상 위에 놓여있는 빨간 미니어쳐 자전거의 체인을 돌린다. 자전거가 굴러간다. 작은 자전거 바퀴에서 귀여운 소리가 들려온다. ...... 진영이는 행복함에 미소를 짓는다.

2011818

 

 

 

 

내 미니어처 자전거는 2년사이에 친구가 여럿 생겼다.

 

 

 

컴퓨터 파일들을 정리하다가 2년전에 적었던 글들을 발견했다.

 

60초 소설이라는 책을 읽고 쓴 글이었다.

60초 소설
국내도서
저자 : 댄 헐리
출판 : 웅진지식하우스 2000.06.15
상세보기

이 책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나도 한번 해봐야지하는 생각으로 책상에 앉아서 쓴 글이다. 60초만에 내용을 구상해서 적고, 덧붙이는 작업으로 몇 분 정도는 더 걸렸던 것 같다. 하다보니 재미있어서 꽤 여러편을 썼다. 그 정체불명의 60초 소설들 중 하나를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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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의지 앞에서 육체적인 피로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대개는 그만한 의지가 없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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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같은 문장을 보고도 한 사람은 깨우치고 한 사람은 그저 그 문장을 안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깨우치는 사람은 삶에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일으키고, 아는 데 그치는 사람은 그저 자신이 알고있는 내용을 정리해둔 머릿속 목록에 한가지 새로운 내용이 더 추가되는 정도의 변화가 일어난다. 변화의 스케일이 다르다. 깨우치는 것은 외부적인 요인에의해서 그 결과가 결정되는 수동적인 자세가아니라 스스로 찾아가야하는 적극적인 수용의 자세이다. 그러니까 깨우치고 말고는 그 대상이되는 내용의 수준과는 별개로 개인의 역량에 달려있다는 것.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말이 이럴 때 쓰기에 적절한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누군가는 일상의 아무것도 아닌 개떡같은 현상에서 찰떡같은 깨달음을 얻는다. 반면 아무리 찰떡같은 말을 해도 개떡같이 알아듣는 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그릇이 그 정도이기 때문이다.

 책을 백 권 읽었든 천 권 읽었든 깨닫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면, 혹은 깨닫고도 삶에서 변화를 일으키려 노력하지 않았다면 의미있는 활동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사실 수백, 수천 권의 책을 읽을 정도의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이 그 속에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믿고싶진 않다.) 물론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어떤면에서 볼 때 중요하고,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지식의 양과 깨달음의 양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과 만나며 느낀적이 있다. 

 

내 마음의 책장은 허영심만으로 가득 채워진 것이 아니라 단 한권이라도 지금의 나를 만든 흔적으로 채워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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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가 몇 가지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예의'. 처음 보든 아니면 여지껏 알아왔던 사람이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사항이있다. 아무리 친하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져야 한다. 여기서 예의란 비단 어른과 아이 사이에 지켜져야할 도덕적 의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관계, 선후배 관계,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 등 모든 인간관계에서 지켜져야할 배려라고 생각한다.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에 있어 그 이유를 묻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예의는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인간관계의 필수 요소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기본적인 도리조차 지켜지지 못한 무례한 모습들은 생각보다 생활속에서 쉽게 발견되어진다. 이는 대개 태도에서 드러난다.

 

예의는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행동으로 표현되는 높고 값진 인간의 기본자세이다.

 

 우리가 인간 관계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바로 '말하는 태도'와 '듣는 태도'이다. 여기서 몇가지 기본적인 예의, 그러니까 초등학생 무렵 배웠을만한 그야말로 누구나 다 알지만 간과하는 몇 가지 중요한 요소들을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먼저 말하는 태도에 있어서 예의란 상대방을 쳐다보며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기서 쳐다본다는 것은 반드시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라는 것만은 아니다. 시선처리의 문제라기보다는 얼마나 집중하고 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핸드폰을 계속 만지며 페이스북을 들낙거린다거나, 엄마가 말을 걸었을 때 컴퓨터 모니터를 쳐다보며 등 뒤에있는 엄마를 쳐다보지도 않고 건성건성 대답하는 것이나 이런 사소한 것들이 무례함의 모습들이다. 이와같은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려 노력하지 않는 상대방과 대화할 때면 벽에다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야말로 '영혼없는 대화'가 바로 이런 대화일 것이다. 이렇듯 대화에 있어서 집중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해당되는 기본적인 예의라고 할 수 있다.

 말을 할 때 기억해야할 또 다른 중요한 점이있다. 바로 '말투'. 같은 말도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른 법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말에는 아름답고 부드러운 표현들이 참 많이있다. 이 모든걸 잘 알면서도 굳이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표현을 골라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에는 보통 첫째로 의도적으로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하기 위함이거나 둘째로 훈련이 되어있지 못해서이거나 둘 중하나인 경우가 많다. 여기서 훈련이라 함은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머릿속으로 다른사람의 기분이나 감정에 대해 생각하는 훈련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이 성격의 차이라고 이야기한다. 누구는 직설적인 성격이고 누구는 돌려말하는 성격이어서 그렇다고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해주는 것이 어떻게 성격에 따라 결정되는 요인이 되어버릴 수 있는지.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이러한 모습을 자신의 성격으로 규정해버리고 개선하지 않는 것은 굉장히 무서운 자기 합리화이다. '나는 원래 화끈한 성격이니까', '나는 원래 쿨한 사람이라서'. 언제부터 배려가 부족한 모습이 화끈함과 쿨함으로 포장되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사람들은 종종 착각을 하는것 같다. 내가 강한 어조를 사용해서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다른사람들 눈에 좀 더 강한사람으로 비춰지지 않을까하는 착각. 좀 더 카리스마있어보이지 않을까하는 착각. 안타깝게도 카리스마는 상처주는 강한어조와 배려심 결여된 말투에서부터 비롯되는것이 아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무섭게 여기긴 하지만 존경하지는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앞에서는 사람들이 높여줄지 몰라도 뒤에서는 존경받지 못한다. 카리스마는 커녕 '성격 파탄자'로 오해받기가 쉬울지도 모른다.

사람의 인품은 말하는 태도와 방식을 선택하는 것에서 부터 결정난다. 말은 목적만 전달한다고 결코 다가 아니다. 말은 목적지향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같은 의미를 전달한다 하더라도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이냐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듣는 태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다음글에서 계속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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