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처음 만난건 2010년 겨울이었다. 이제 막 스물이 된 너는 졸업도 안한 고딩이라기엔 다소 어른스러운 면을 많이 갖고 있는 애였다. 신입생 환영회였나? 무대에 올라 주목받던 순간에 수줍게 웃던 네 모습이 생각난다. 갓 졸업한 고딩남자애들에겐 잘 없는 표정. 대개 그 나이 또래 남자애들은 무대에 올라가도 무표정하거나 웃더라도 진행자가 말을 시켰을 경우에나 웃지 아직 아무일도 벌어지지 않은 순간에 혼자 미소짓지는 않는다. 그런데 너는 무대에 올라 마치 앞으로 벌어질 모든 일을 예상한다는 듯 부끄럼섞인 미소 짓고 있었다. 고딩에게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정제된 어른스러움이었다. (그리고 노잼의 향기도 같이 느꼈다.)

그 이후로도 여러 번에 걸쳐 너로부터 '내가 범접하기에는 어려운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저기서 네가 상당히 신앙심이 깊은 아이라 전해들어서 모르긴 몰라도 일단 나랑은 안맞을 같았다. 21살의 나는 기도나 신앙생활보단 그냥 교회친구들이랑 놀러가고 맛있는거 사먹고 노는게 좋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너의 존재가 잊혀져갈 때 즈음, 갑자기 문득 네가 생각나 누군가에게 물은적이 있다. 내가 속한 공동체의 A라는 오빠였던 것 같다.

- 예전에 열심이던 애, ㅅㅎ이요. 걔 왜 요즘 안보여요?
- 아 걔, 그 때 한참 열심히 하더니 그 뒤로 교회 잘 안나왔나봐. 걔가 사실 교회 다닌지 얼마 안된애였거든. 난 걔가 초반에 그렇게 열심히 할 때부터 불안하더라고. 시작부터 갑자기 불타오르면 꼭 나중에 끝이 안좋더라.

그 대화가 내겐 적잖이 충격이었다. 그렇게 열심이던 애가, 그렇게 신앙이 깊어보이던 애가 교회를 떠나도 하는구나. 교회 안나오면 큰일나는줄 알았던 그 시절의 나는 놀란 마음을 애써 감추며 무덤덤하게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널 잊고 지낸지 또 한참이 흐른 뒤. 페이스 북을 통해 널 다시 만났다. 친한 언니를 통해서였다. 네가 쓴 글이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대충 창조과학 등 기독교 안의 반지성적 태도와 관련된 네 생각이 적혀있었고 그런 마음을 공유할 공동체를 찾는다는 글이었다. 평소에 나랑 교류가 잦았고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 나오는 그 언니는 네가 쓴 그 글에 나를 태그했다.
"이런 문제에 대화가 통할 사람 소환" 언니는 날 태그한 뒤 이런식으로 댓글을 달았던 것 같다. 사실 나는 그렇게 태그를 당하고 적잖히 당황했다. 에, 내가 이 런 문제에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맞나. 싶었다. 그래도 일단 좋아요를 누르고 의연하게 댓글을 달았다. "내가 아는 이상현이 맞나? 오랜만이야~" 이런식으로 댓글을 달자 너도 답글을 달았다. "누나 오랜만이에요. 잘지내죠? 친구신청 할게요 -" 이런식이었다. 그렇게 너와 나는 잊고 산지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연결될 수 있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나는 안산에서 여러 활동을 하며 급기야 책방을 오픈하기까지 했다. 책방을 오픈한지 얼마 안 된 5월 즈음에 너는 갑작스럽게 책방에 방문했다. 페이스북에서 책방을 열었다는 내 글을 보고 찾아왔다. 아주 오랜만에 너와 대화를 나눴던 순간인데 안타깝게도 너무 갑작스러워서 무슨 대화를 했는지 생각도 잘 안난다. 그날 했던 말 중에 유일하게 기억이 나는 대화는 네가 당시 나랑 한 살 차이밖에 안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냥 동생으로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있었는데 그 날 처음 알게되었다. 생각보다 나랑 나이차가 없었구나. 그 외에는 네가 사간 책이 생각난다. 쓸데없는 대학원생 아무거니 설명서, 저 청소일하는데요, 그럼 애는 누가봐요 너는 학급문고에 비치한다며 이렇게 세 권정도를 사갔다.

두번째 왔을 때도 학급문고에 둔다며 무슨 책을 사갔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세번째 왔을 때는 다른 사람과 함께 왔고 그 날은 음모론의시대와 자취의 자취를 사갔던 것 같다.

그리고나서 한 번 정도 우리가 더 만날 기회가 있었다. 네가 친구들을 데려온다고 했었는데 내가 요가를 가는 바람에 일찍닫아야한다고 답변을 했었다. 그게 마지막연락이었다.


그리고 나서 우리가 왜 다시 만났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 지금 막 생각났다. 너가 연수가 있어서 근처에 왔다며 교회에 찾아왔다. 2월 중순? 말? 그 즈음이었다. 우린 그날 한참을 대화했다. 교회에서 한참, 쌀국수 집에서 한참을 이야기 나눴다. 무슨얘길 했는지 기억도 안난다. 우리가 가볍게 할만한 대화가 뭐가있었을까. 아마 사랑, 연애, 지향하는 가치? 뭐 그런 얘기들을 했던 것 같다. 아! 너에게 사람들은 모두가 가치있는 곳에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쏟기 마련인데 너는 나랑 왜 시간을 보내냐고 물었다. 정말 궁금해서. 그랬더니 너는 누나랑 이야기하는 것이 재미있고 누나라는 사람이 매력이 있어서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곤 집에 왔다.

집에 돌아와 한참을 너와 했던 대화를 곱씹었다.


이 이후부터는 내가 여러차례 일기를 써두어서 더 적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만났다.
참 소중한 시간인데 내 기억력이 다 닿지가 않는다. 그래서 더 잊기전에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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