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2일의 일상
2013년 3월 12일의 일상
이미 어제가되어버린 하루를 그리워하며 쓰는 글.
등교
오후1시. 공강날 느즈막히 집에서 나와 학교가는 발걸음은 여유롭다. 보통은 목적지를 향해 이동할 때 쉽게 잠이 들지 않는 편인데, 딱히 시간적인 제약이없고 그야말로 여유로울 때 잠은 언제 그랬냐는듯 꿀같이 찾아온다. 꿀잠이란 이런것이지. 창밖은 대낮부터 울컥울컥 비가 올 것만 같고. 나는 우산을 안가져왔고.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비가오면 맞고 가면되지.
머릿 속
해야할일들에 대한 정리. 부탁받은 디자인을 시간내에 해야하는데 왜이리도 하기싫은 것인지. 어떤 일에대한 계획이 명확하게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을 때 무언가를 하기까지 참 많은 의지가 필요하다. 애써서 고민하고 애써서 시행착오를 겪어야하는데 그럴 의지가 부족하다. 알면서 미룬다. 미루고 미루고 미루고 미루고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그제서야하겠지. 물론 잘이야 하겠지. 그런데 발등에 불 떨어지기 전에는 왜 이렇게 하기가 싫은 것이냐ㅋㅋ 난 천성이 게으르다. 천성이 굼벵이. 상황이 이렇다보니 남들보다 의지가 몇 배는 강해야 남들만큼의 무언가를 할 수 있다.
행복
짤막하게 모임이 끝나고 착한 상필오빠가 밥을사줬다. 무려 2700원짜리 밥을. 아 우리가 벌써 4학년이에요. 벌써 그리워요. 졸업하지말아요. 졸업해도 종종와서 학식몰래 먹고가자고 결론짓고. 단대에서 우리학교까지 놀러온 한나에게 나는 커피를 대접했다. 그리고 한나는 배부르다면서 또 군만두를 먹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참 즐겁고 행복하고 정말정말좋다.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집가기 싫다고 징징. 어디론가 떠날 것을 제안했지만 글씨도 네모반듯하게 선생님처럼 완전잘쓰고 나와는 달리 삶을 계획있게 살아가는 공대생 상필오빠가 나랑 놀아줄 리없다. 나더러 완전 즉흥적이라고 나무라고. 홀연 사라져버린 그들....
하교
오후 5시반. 집에가고 싶지 않다. 집에서 나온지 몇시간 안지나서이기도하고. 바람결이 너무좋기도해서 집으로가기 싫은 날. 하염없이 걷고싶은 날ㅎㅎㅎㅎㅎ 감수성폭발. 이럴 때는 언제나처럼 소소한 일탈을 즐긴다. 집에가는 경로를 바꾼다. 늘 보던 창밖이아닌 새로운 창밖이 보고싶어서 생전 타본적도 없는 버스를 그냥 타본다. 나이가 스물 넷인데 세시간이 걸려도 두 발로 집엔 도착하겠지라며. 스릴즐기기. 여기서 중요한건 버스노선도를 자세히 보지 말고 그냥 버스에 아는 동네 이름 하나만 써 있어도 타는 것. 무조건.
긴장
은 커녕 신나서 창밖을 구경했다. 그렇게 도착하니 오후 6시 50분. 생각보다 내 머릿속엔 아는 동네가 많구나. 어디로가도 길을 잃지않는다. 어른이 된건가. 더 어릴적에는 모르는 버스타는 것이 걱정스러웠는데 말이지. 내가 어른을 구별하는 척도는 이렇게 사소하다.
오후 내 울먹울먹하던 하늘은 이내 울기시작했다. 비가 막 오기 시작할 때 아스팔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몸에 안좋을것 같은 그 냄새가 나는 좋다. 이게 무슨냄새인지는 모르지만. 촉촉하게 스며드는 기분. 우산이 없는 나는 비를 피할 겸, 해야하는 일들을 처리할 겸, 집에 가기 싫은 겸, 겸사겸사 눈앞에 보이는 커피숍에 들어갔다. 커피숍에서 놋북켜고 집중하기란 쉽지 않은일인데 역시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어디서 나오는 건지 알 수 없는 괴물같은 집중력이 발휘되고, 고민의 실마리를 찾아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
집으로
오후 9시 20분. 더 늦기전에 집에가자. 짐챙기고 나왔다. 여전히 하늘로부터 방울방울 내리는 비. 후드를 뒤집어쓰고 유유자적하게 버스를 타러 이동. 버스에는 야자를 튄건지 아니면 안한건지 몇몇의 고딩들이 시끌시끌하게 수다를 떨고있다. 한자리에 낑겨서 두명이 앉는 베짱. 나는 그 모습을 재밌게 관찰했다. 버스는 흔들흔들. 창밖의 야경도 흔들흔들. 내 머리도 흔들흔들. 내 마음도 흔들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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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으면서 긴 하루의 여정이 끝나고 집에오자마자 밥먹고 바로 다시 놋북을 잡았다. 그렇게 미루던 일들은 무한괴물집중력으로 다시찾아와 새벽 1시반까지 나를 풀가동시켰다. 엄청난 풀가동 끝에 결과물이 나오고. 집중력은 다시 어깨통증으로 찾아온다.
그러고보면
미루기와 집중력과 어깨통증은 사실 다 같은 애들이다.
그렇게 나는 어제를 살았다.
오늘은 뭐하고 살까.